뉴스

회원사와 협회의 최근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2008-03-05) Post-국정홍보처 시대의 홍보

월요일 2월 18, 2019

협회소식

Post-국정홍보처 시대의 홍보

김경해(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대표이사)

지난해 국민들이 내린 선택에 따라 참여정부의 뒤를 이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많은 국민들이 희망찬 변화를 기대하는 가운데 우리 홍보업계는 국정홍보처의 폐지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되었다. 국정홍보처의 폐지는 단순히 정부조직 편제의 변화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새 정부에서는 모든 정부부처 직제에서 ”홍보”라는 말은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실패의 책임과 일방적 정책홍보방식에 따른 부정적 이미지를 홍보업계가 함께 떠안게 된 셈이다. 따라서 지금은 홍보업계가 현재 안고 있는 이미지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우리 홍보업계의 앞길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본 글에서는 홍보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홍보업계가 공공부문에서 겪었던 윤리적인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우리 홍보업계의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미국의 국가역사는 길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다양한 홍보모델을 발달시켜 왔는데 각 모델마다 장단점을 안고 있다. 먼저 미국의 독립전쟁을 촉발시킨 것으로 유명한 ”보스톤 대학살(Boston Massacre)”은 사실 보스톤에 주둔한 영국군이 군인과 시비가 붙은 보스턴 항구의 부두깡패 등 다섯 명을 사살했던 사건인데 보스톤의 선동가(propagandist)들이 시민들을 움직이기 위해 ”대학살”이라고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다. 정치적인 선동의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하여 ‘대학살’로 과장한 것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불리우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서양 속담 중에 ‘강을 건너는 도중에는 말을 바꿔 타지 말라’(Don”t change horses in the middle of a stream)는 표현이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중에 지도자를 바꾸지 말라는 뜻으로 이 속담을 사용해 재선에 성공했으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자신의 네번째 임기에 도전하면서 같은 속담을 캠페인 슬로건으로 사용했다. 이에 공화당 후보였던 토마스 듀이 측에서는 당시 유명한 선전담당자(press agent)였던 짐 모란(Jim Moran)으로 하여금 네바다의 트러키(Truckee) 강에서 말을 바꿔 타는 이벤트를 연출하도록 했다. 말을 타고 강을 건너던 짐 모란이 강 한 가운데서 가볍게 다른 말 위로 올라 타자 강 건너편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속담 그대로 말을 바꿔 타도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이 사진으로 ‘한 방’을 노렸던 공화당 후보는 결국 큰 표 차이로 선거에서 패하고 말았다. 정책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홍보활동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단지 시선을 끄는 유사사건(Pseudo event)을 만들어 낸 것은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990년대 초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시 쿠웨이트 정부와 한 글로벌 홍보대행사가 만들어 낸 ”인큐베이터 학살사건” 또한 세계적으로 윤리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미국 의회에서 15세의 나이라(Nayirah)라는 이름의 소녀는 병원 안에 난입한 이라크 군이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수 백 명의 아기들을 바닥에 던져 죽게 만들었다는 증언(testimony)을 했으며 해당 홍보대행사에는 이라크군의 만행에 관한 VNR(Video News Release)을 제작해 전국의 매체에 배포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소녀가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져 증언내용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자유 쿠웨이트를 위한 시민모임(Citizens for a free Kuwait)”이라는 시민단체의 실질적인 후원자도 쿠웨이트 정부였음이 밝혀졌다.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 사실을 조작했다는 점과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뒤에서 조종하는 행위가 미국 PR협회 윤리강령에 위배되어 관련자와 해당 홍보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다.

위에서 살펴 본 사례들이 다소 극단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지만 정책홍보의 목적이 공공성을 띤다고 해도 절차 및 수단에 있어서까지 윤리적인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음을 지적하고 싶다. 홍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미다스(Midas)의 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정부부처와 기업들은 홍보인만 개입되면 그 어떤 것이든 잘 포장되고 미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때로는 우리 업계도 스스로를 ‘분장사’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랜 PR역사를 지닌 미국의 정책홍보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이 우리에게서도 부분적으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방향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홍보업계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노무현 참여정부에 허물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자금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투명성을 높여서 PR의 사업영역을 키웠다는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전에는 사회가 불투명했기 때문에 주로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홍보(defensive PR)만이 가능했다. 그러나 사회 전반이 많이 투명해지면서 각 조직에서 국민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홍보활동이 더욱 활성화 되었다. 참여정부가 기존 언론에 불만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정부체제 및 정책의 일방향적인 전달도구로서 홍보업계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 언론과 국민들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다. 친정부 매체와 일방향적인 홍보를 통해 정부의 메시지를 직접 국민에게 전달하려는 시도는 결국 새 정부의 국정홍보처 폐지로 이어졌으며 홍보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으로까지 귀결되어 버린 것이다.

참여정부 아래에서 주요 정책을 포장, 화장, 과장하는 도구로 쓰이면서 홍보업계 스스로 홍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낳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가 내세운 국민의 정책참여 과정에 과연 우리 홍보업계가 국민과 정부의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을 이끌어 내는데 얼마나 기여했던가? 당장의 사업수익에 이끌려 좀 더 전략적이고 전문성 있는 홍보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소극적이지 않았던가 하는 뒤늦은 자성을 해 본다.

최근 홍보업계를 둘러싼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해외 홍보업계에서는 새로운 홍보용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새로운 홍보기법들이 활용되고 있어 국제적인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우리 홍보업계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홍보업계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큰 생각(Big Think)”이 필요하다. 필자가 오래전부터 강조해 온 바와 마찬가지로 최근 방한한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대학의 번트 슈미트(Bernd Schmitt) 교수는 기업들이 ‘큰 생각’을 펼쳐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슈미트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는 매일같이 산을 향해 바위를 굴려 올리다 실패하는 저주받은 삶을 반복하지만 오디세이는 오랫동안 지속되던 트로이와의 지루한 전쟁에서 대형목마를 생각해 냄으로써 승리를 이끌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난공불락의 트로이 성을 공략하기 위해 오디세이는 대형목마 속에 군사를 숨겨둔 채 트로이에 선물로 바친 뒤 승리감에 도취한 트로이 성을 하룻밤만에 함락시킨다. 결국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틀에 박힌 작은 생각을 벗어나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창조적인 큰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홍보업계도 마찬가지로 ‘큰 생각’이 필요하다. 미국 홍보업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에드워드 버네이즈(Edward Burnays)는 1920년대 중반에 판매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베이컨 회사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버네이즈는 미국인들의 식생활 변화로 인해 베이컨 시장이 축소된 상황에서 경쟁업체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기 보다 아침식사의 영양학적, 의학적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시장을 키우고자 했다. 버네이즈는 토스트와 커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때우던 미국인들에게 저명한 의사들을 통해 아침식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마침내 계란 후라이와 베이컨이 포함된 미국식 아침식사(American Breakfast)가 미국 사회에 뿌리 내렸고 당연히 베이컨 시장은 급성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홍보업계가 큰 생각을 할 때 고객사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동시에 홍보시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사회적 미디어(social media) 등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동향에 대해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와 ‘공유’로 대표되는 사회적 매체의 등장과 이에 따른 사회적 현상은 더 이상 전통적인 언론관계 활동이 효과적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새 파워블로거와 전통적인 언론매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소비자들이 직접 생산한 메시지가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사회가 되었다. 물론 모든 홍보인들이 블로그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으나 새로운 흐름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이해하고 자신의 업무에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미 마케팅이나 광고업계 종사자들은 새로운 미디어를 업무에 적극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셋째, 홍보업계의 윤리성을 높여야 한다. 비록 참여정부에서 퍼블리시티 기능이 주로 활용되었지만 우리 홍보업계는 전략적 컨설팅과 공중의 관계관리 기능을 담당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도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펼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로부터 윤리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홍보기업 및 직원 전체의 윤리의식을 높일 때에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의사나 변호사들은 전문성과 함께 윤리성을 강조함으로써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우리 홍보업계도 윤리의식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과 실천이 필요한 때라고 하겠다.

네 번째로, (‘홍보’를 ‘홍보’하기 위한) 홍보업계의 단합된 노력이 필요하다. 홍보의 다양한 기능과 더불어 효과성 및 효율성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알려야 한다. 광고나 마케팅에 비해 홍보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들이고서도 효과적인 결과(cost effective)를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아직까지 사회 각계에서는 홍보의 효율성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이 새 희망을 갖고 맞이하는 이명박 정부시대에 정작 우리 홍보인들은 홍보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스스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비록 지금은 홍보에 대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인들이 산재해 있지만 업계 전체가 홍보업무의 전문성과 윤리성을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우리 홍보업계의 노하우(know-how)이듯 현재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도록 하자. 이번에 한국 PR기업협회에서 발행하는 온라인 계간지가 회원사를 비롯한 업계의 윤리의식과 전문성을 높이는데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홍보산업의 진정한 전도사가 되기를 기대한다.